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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선언서

출범선언서





역사적 배경

일제와 외세의 침략으로 암울했던 조선말, 기울어져가는 나라에 부국강병 정책(국가발전정책)을 도입하기 위하여 고종황제는 일본에 수신사, 중국에 영선사, 미국에 보빙사절단 등을 보내 검토한 결과 고종황제는 미국의 제도를 채택하고 도입하기 위하여 마침내 선교윤허를 하였고, 1885년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하여 학교짓고, 병원짓고, 신문물을 전수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하여 조선땅에 민족여명(民族黎明)이 찾아왔으며, 수많은 인재들이 양성되어 점점 포악해지는 일제에 항거하면서 나라를 회복시키려는 독립운동의 태동과 새로운 교육과 문화를 통하여 민족을 깨운지 34년 되는 해 1919년 기미년 31일 삼일운동이 발발한 것이다.

 

* 1895년 일제는 명성황후를 무참히 살해하였고, 1897년 고종은 원구단에서 절대 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하며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고종은 황제로 등극하며 연호를 광무라 하여 쓰러져가는 나라를 다시 재건하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강탈되고 국권을 빼앗겨 마침내 1910년 강압적인 허위조약에 의한 경술병탄으로 말미암아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

 

19051117일 을사늑약은 사실상 일본에 조선왕조의 실권을 빼앗기는 민족의 대 수난이었으며, 고종황제는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헐버트와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하여 일제와의 조약은 무효임을 선언하고, 조선은 자주독립국임을 만국에 호소를 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형식적으로 순종황제를 즉위시키며 국권을 찬탈하고 마침내 포악무도한 그들에게 국가의 모든 기능을 빼앗기고 말았다.

 

을사늑탈로 민영환 등 의열사들의 투쟁과 전국에서 을사의병, 정미의병이 항거하였고, 항일독립운동가들은 목숨걸고 의열투쟁에 돌입하였으며 미국, 연해주, 중국, 일본 등 해외로 흩어져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나갔다.

 

1909년 안중의사 의거 등 항일독립운동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진행되며 일제의 불법통치에서 벗어나 국가를 회복시키고자하는 국민의 열망이 점점 고조되어 갔다.

 

 삼일운동의 태동

한일병탄으로 독립운동가들은 대거 해외로 이전하여 독립군을 조직하여 일본에 전쟁을 선포 하였고, 19177월 상해에서 조소앙이 기초하고, 신채호, 박은식, 박용만 등 15명이 대동단결선언문을 작성하여, 조선은 자주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하였으며, 이와 같은 민족의 숭고한 독립정신은 191921일 만주에서 조소앙이 기초하고 김좌진, 이승만, 이시영, 박용만, 박은식, 신채호, 안창호 등 39인의 대한독립선언과 이광수가 기초하고 최팔용 등 11명의 동경유학생이 선언한 2.8 독립선언, 최남선이 기초한 민족대표 33인의 기미독립선언으로 이어지며 대동단결선언은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대동단결선언문에서 반만년 역사의 한국인은 한국인 사이에 주권을 주고받는 것은 역사상 불문법의 국헌(國憲)이요 비한국인에게 주권을 양여(讓與)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효이며, 한국민족성은 절대 불허하는 바이다. 융희황제가 삼보를 포기한 경술국치는 우리국민에 대한 묵시적인 선양(禪讓.禪位)으로 우리국민은 삼보를 계승하여 4천년의 주권이 상속 된 나라를 이어가야하는 특권과 대통을 상속할 의무가 2,000만 살아있는 영혼(生靈)과 삼천리강토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하고 이는 민권발생의 때로서 구한국 최후의 하루는 곧 신한국 최초의 하루임을 천명하고 태초이래로 계계승승하는 삼보(三寶:토지 국민 정치)를 상속하는 사건이며, 주권국가임을 선언하였다.”

 

대동단결선언은 첫째 동족간의 대동단결, 둘째 일제의 정권강탈은 불법 무효이며, 이는 대한제국 황제로부터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양된 것이며, 셋째 무상법인, 즉 망명 임시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민족의 하나된 염원을 세계만방에 공표하는 민족적 거사는 계획된 것으로 삼일운동은 고종황제와 손정도목사 등이 북경에 망명정부를 추진하다 발각되어 1919121일 일제의 사주로 이완용에 의하여 독살 된 고종황제의 장례식을 전후하여 치밀하게 비폭력만세운동으로 기획하였다.

또한 삼일운동은 중국에서 대한독립선언, 일본에서 2.8독립선언, 한국에서 기미독립선언이 선포된 것 같이 국내외에서 모든 백성이 준비한 민족적인 거사이다.

 

삼일만세운동

3.1 운동은 민족대표 33(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병조 나인협 이명룡 박준승 오세창 최린 김창준 양전백 이승훈 박희도 오화영 한용운 권동진 양한묵 이종훈 박동완 정춘수 홍병기 권병덕 유여대 이종일 신홍식 최성모 홍기조 김완규 나용환 이갑성 임예환 신석구)이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기미년(1919) 3월 1일 정오 탑골공원에서 역사적인 만세운동으로 준비하였다. 그러나 탑골공원에서 태화관으로 모임 장소가 변경됨으로 인해 민족대표들이 탑골공원에 참석하지 못하자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김상옥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운동이 탑골공원에서 시작되었고, 장안(長安)으로, 삼천리강산 방방곡곡으로 확산되었다.

만세운동은 침략자 일본과의 조약무효, 식민통치를 부정하고, 대한독립을 선언하는 민족의 함성은 연일 하늘에 가득하였다. 참여한 모든 백성은 비폭력으로 대한민국이 독립국가임을 선언하는 하나된 함성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었다.

 

실로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만세운동은 3,000만 민족이 하나 된 거사로서 고종황제 장례식에 맞추어 전국 각지에서 탑골공원으로 모여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역사적인 삼일만세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독립만세운동 규모는 참여시군 211개소, 집회회수 1,542,

참여인원 2,023,098, 사망자수 7,509, 사상자수 15,961,

투옥자수 46,948, 참여시군 211개소의 발발장소마다 교회와 교인 등이 중심이 되었으며, 2,000만 국민 대다수의 가정이 참여하였고, 삼천리 방방곡곡 전국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장장 14개월간 지속된 세계사에 유례없는 민족운동이었다.

 

삼일운동으로 인한 민족사의 변화

3.1운동은 봉건시대에서 민주공화제로 전환하는 민족사의 대변화의 전환점으로서 4월부터 러시아, 상해, 서울, 미국 등 여러 지역에 임시정부가 세워졌으며, 반만년의 왕권시대에서 세계사의 흐름에 부합된 자유 평등 인권을 존중하는 의회민주공화제를 지향한 대한민국이 탄생되었다.

 

삼일운동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411일에 수립된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에서는 일본을 향하여 국가대 국가로서 선전포고를 하였으며, 만주연해주 등지에서 독립군들의 무장투쟁과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 등이 더욱 활력을 발휘하였고, 국내외적으로 독립전쟁이 진행되어 김상옥의 서울시가전, 나석주 의거, 광주학생운동, 6.10만세운동, 이봉창, 윤봉길, 김익상, 조문기 의거 등으로 이어졌으며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으로 조국은 광복을 맞이하였다.

 

삼일운동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

삼일운동은 약육강식과 식민통치가 난무하던 시대 불행한 세계사에 종지부를 찍는 운동으로 발전한다. 삼일운동은 피지배민족이 침략국에 대하여 빼앗긴 자유와 평화를 되찾기 위한 약소국가의 독립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운동으로서 이와 같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피압박 민족에게 희망을 주고, 비폭력 저항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1. 1919년 중국 5.4운동의 선언문에서 독립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대한민국을 본받자고 구호를 외쳤다.

2. 19194월 인도에서 마하트마 간디를 중심으로 일으킨 비폭력 무저항운동은 곧 3.1운동의 영향이었다.

3. 19196월 필리핀의 학생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4. 1919년 이집트의 카이로 대학생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동남아 아프리카 등 여러나라에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활력소가 되었다.

 

이와 같이 삼일운동은 인류가 추구하는 삶의 기본요소인 자유와 평등,평화를 갈망하는 피압박 민족에게 불의에 항거하는 결집된 힘의 위력을 실현한 민족운동으로서 지구촌 인구의 절반에 버금가는 약소 민족국가에 희망을 안겨준 사건이다.

 

삼일운동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의 가치

삼일운동은 인류의 공동가치인 인간의 자유와 평등, 평화와 주권을 빼앗은 침략국에 대한 인류사의 비폭력 저항으로서 세계평화운동사 최초최고의 금자탑이다.

 

삼일운동은 한민국 헌법정신으로 국가의 정체성을 이루며,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정신으로서 19604.19혁명과 19805.18 광주민주화운동, 2016년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민족정신문화의 기초가 되었다. 이와 같은 삼일운동 정신은 이념, 사상, 시대를 초월하여 향후 통일헌법에서도 영원히 보존되어야 할 민족문화유산이다.

 

삼일운동은 당시 피압박 국가에 비폭력 독립운동을 촉발시킨 것과 같이 세계의 모든 나라 민족이 추구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 평화가 삼일운동정신에 담겨있기에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이다.